살면서 늘 참 즐거운 일이 별로 없습니다. 뉴스는 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험난한 일들을 먼저 앞다투어 전합니다. 가뜩이나 활력을 잃은 삶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풀이 죽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삐뚤어진 쾌락으로 힘을 공급받으려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농담을 던집니다. 예수 믿기 전에 세상의 재미있는 일을 많이 즐겨야 한다고. 그래야 산다고. 이 가벼운 농담 속에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아쉬움 그리고 맹목(盲目)이 묻어납니다. 이는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처럼 우리를 경계선에서 망설이는 사람으로 만들어 정체성을 잃게 하는 참담한 공상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런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뻐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요? 기쁨은 사는 힘입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어린아이처럼 나뭇잎이 바람이 팔랑거려도 웃고, 친구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 깔깔대고, 떡볶이를 먹다가 친구가 던진 말 한 마디에 자지러지는 것이 기쁨이라면 우리에게 기쁨은 이미 오래 전 땅에 묻어버린 타임캡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찾는 자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깊은 사랑이 담긴 가슴에서 우러나온 삶을 살아갑니다. 그 일상은 소소하고, 표현은 뭉근합니다. 어떤 열정보다 더 뜨거운 고요가 그 목적을 사는 일상에 담겨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겠다는 삶의 방향을 놓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뭉근하게 가슴을 채우는 이 삶의 목적 때문에 삽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더 큰 기쁨을 위해 떠난 순례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성장하는 만큼 값진 것을 알아챕니다. 어릴 때는 사탕의 달콤함에 끌립니다. 불량식품일수록 더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단 것을 멀리 하기도하고, 좋아하는 것을 끊어 내기도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과정입니다. 과정은 목적이 있기에 견딥니다. 그 견딤이 달콤함입니다. 믿음의 어른은 어른의 믿음에 걸맞는 상상을 합니다. 진정한 달콤함은 하나님께 이끌림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입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목사는 자신을 그리스도인 쾌락주의자(Hedonist)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여호와를 기뻐하라(Desiring God)”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될 때, 우리는 사랑의 사역을 위한 내적인 힘을 끝까지 공급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서 충고합니다. “우리의 입으로 사탄이 유혹하는 쾌락을 맛보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은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있는 어둠을 몰아내시려 등불을 켜면(시18:28), 우리는 주의 말씀의 등을 들고 내 길을 비추는 약속의 길을 따라 걸으며 목적을 향해 걸어갑니다. 믿음의 인생은 어둠이 빛으로, 두려움이 평안과 기쁨으로 바뀌는 길을 걷는 일입니다. 무서우면 밤길을 걷는 아이처럼 노래를 부르세요. 주제는 물론 예수입니다. 더샘물식구들은 참 쾌락주의자로 살기로 선언합니다. 기뻐하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 앞에서 슬퍼하고, 하나님 앞에서 낙담하다가 하나님을 인해서 일어나겠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에 머무는 사람은 참 기쁨을 누릴 수 없기에, 간청합니다. 우릴 예수와 영원히 사랑하게 해주세요. 기뻐하게 해주세요.

2018년 4월 20일
함께 참 쾌락주의자의 대열에 서있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