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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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면 반가움에 마음이 무장해제가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이름으로 무례함을 범합니다. 상대방의 약점과 아픔 그리고 누군가의 연약하고 가늘게 견디던 치명적인 뇌관을 기어코 눌러 버립니다. 감정은 폭발하고 모두가 당황하는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모임이 끝나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자신도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을 확인하고 또 좌절합니다. 그동안 견딘 것이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례함, 친근하다는 빌미의 무도함은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입니다. 문제는 믿음의 성숙여부와 상관없이 버젓이 매번 명절같은 때마다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디는 일이 인생의 시작입니다.

폴 오스터의 장편소설 [어둠 속의 남자]에는 은퇴한 평론가가 나옵니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운명의 무례함에 충격을 받습니다. 아내를 잃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덕분에 잠을 잃었습니다. 지독한 불면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 고통을 잃기 위하여 주인공 브릴이 한 일은 매일 밤 이야기를 만들어 자기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는 불면의 고통을 온통 이야기로 채웁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우리가 만나는 불행한 사건들을 이기게 합니다. 대한민국이 드라마 공화국이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소위 막장 드라마도 있으나 사실,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이야기꾼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인생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혈관에 피가 다니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의미 있는 삶은 이야기가 있기에 지탱됩니다.

신자를 지탱하는 기가 막힌 드라마가 있습니다.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무례함으로 내상을 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불면의 밤을 해석하고 평안의 새벽을 맞이하게 하는 우리의 거룩한 이야기, 그 드라마가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이야기는 고통을 이기고 고독을 견디게 하는 능력을 줍니다. 어서 와서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라고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그 참음과 견딤의 이야기가 끝날 때, 우리는 언젠가 예수의 이야기, 그 거룩한 교회의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또 누군가에게 들려질 것입니다. 불면의 밤을 건너야 하는 사람, 관계의 고통 중에 내상을 입고 신음하는 사람, 열패감과 우월감 사이를 왕복 달리기하며 못난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는 이에게, 예수의 이야기를 간직한 우리 인생이 그 사람을 예수의 광대한 이야기로 초청하는 출입구가 됩니다. 사건을 이야기로 만드는 대장장이 예수님의 뒤에 서서 나의 사건을 가지고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기도합니다. 생명을 빚으소서. 정금같이 쳐서 단련하소서.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12:1-2).”

2023년 추석을 앞두고,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