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借景)으로 구원을 맛보다

미국에서 목회를 할 때, 제가 살던 도시 바로 옆 도시가 많이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차로 10분을 운전해서 가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원이 있었습니다. 그 넓디넓은 공원에는 높이가 10센티도 넘는 잘 가꾸어진 푸른 잔디가 어디나 깔려 있었습니다. 축구 같은 운동을 하기 딱 좋은 곳인데, 늘 사람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거닐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바쁜가 보다. 이 좋은 환경을 왜 이용하지 않을까?’ 궁금증은 금세 풀렸습니다. 그 동네는 수준이 달랐습니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훌륭한 정원이 딸린 집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역설적이죠? 집에 딸린 정원이 다 좋아서, 거기 사는 이들은 공원에 갈 필요가 없는 도시였던 겁니다. 미국에도 그런 도시는 많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인 평균은 더 낮겠지요.

우리 사는 걸 돌아봅니다. 좁은 땅인 우리나라에서 개인 정원을 소유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제가 본 미국의 공원보다 넓은 정원을 누렸습니다. 이게 무슨 ‘아Q의 정신승리법’이냐고요?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돈 들이지 않고도 큰 정원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 비법은 차경(借景)입니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려오는 겁니다. 내 것으로 가지려 하지 않고 잠시 빌려서 쓰는 겁니다. 그 경치가 머문 산과 강 그리고 바다 그 위에 드리운 하늘을 누구라도 함께 쓸 수 있는 겁니다. 작게 제한된 공간에서 살지만, 문과 창문을 열면 온 자연과 마주하면서 누리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는 겁니다.

구원은 차경(借景)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면, 우리가 소유할 수 없었던 구원이 햇살처럼 인생 안에 번져갑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생명이 선물처럼 그 인생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축축하고 어둡던 인생, 어찌할 수 없었던 인생이 바뀝니다. 소유할 능력이 없었던 구원을 온 자연을 누리듯 인생에 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문제들과 마주합니다. 사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정말 힘겨울 때 사람들은 인생의 문과 창문을 닫아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문을 열어야 어둠이 달아납니다. 믿는 자마다 그렇게 살았고, 살아갑니다. 살면서 더 깊이 누립니다. 주님의 구원의 빛이 6월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산과 나무처럼 우리를 살게 합니다. 세상은 유사 이래, 가장 어려운 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세상이 늘 어려웠다는 걸 압니다. 어려움을 느낄 때, 주님께 문과 창문을  활짝 엽니다. 눈 앞에 펼쳐진 위대한 구원의 풍경을 보고 약속 있는 쉼과 평안을 누립니다. 믿는 우리가 어려운 때를 사는 소중한 이들에게 예수구원의 이 풍경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예수구원의 풍경을 소중한 사람이 차경(借景)하게 해주세요. 맛보게 해주세요. Just Taste it!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8).”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Psalm 34:8).”

 

여러분과 함께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어 기도하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