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활의 택배입니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누가 보냈는지 모른다/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택배로 온 슬픔이여/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나에게만은/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마지막 한 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
[시인 정호승, ‘택배’ 전문(全文)]
정호승 시인이 등단 50년이 되는 해에 ‘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제목의 시집을 발간했다는 소식을 접한 게 10월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의 시는 그동안 사회에 대한 증오가 포용으로, 포용한 인생을 이제 죽음을 대조해서 인생의 의미를 헤아리는 성장을 계속했습니다. 내게 청년 시인이었던 그는 이제 70을 훌쩍 넘긴 노년의 눈으로 인생을 성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항상 인생의 핵심을 관통하려 해서, 그 눈을 빌려 인생을 보려 하곤 합니다.
시어가 정겹지만 인생은 처연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살아온 만큼 그 인생이 무슨 맛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인생을 자녀도 살아내야 합니다. 자기 인생의 겨울 눈밭에 주저앉아 울지도 모를 자녀가 미리 보낸 택배 아닐까 오독(誤讀)해봅니다. 믿음은 인생의 모든 죽음이 부활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만나고, 염려하고, 끙끙 앓는 모든 죽음의 증상의 처방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얻은 것이 이 땅에서 잠시 사는 동안 누리는 작은 감동이 전부라면 우리야말로 정말 불쌍한 사람들(고전15:19)”이라고. 시인의 성찰 너머에 있는 살아갈 이유인 부활이 있어, 오늘 우리가 바울처럼 고백합니다. “예수를 힘입어 숨쉬며 삽니다(행17:28).”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던 시간, 택배가 없었다면, 끼니와 생존이 어려웠을 겁니다. 냉동 해장국, 설렁탕, 갈비탕 등등, 택배로 온 ‘국물’에 의지해 목구멍에 밥을 넘겼습니다. 어려운 때, 택배는 가브리엘 천사 같은 방문자였습니다. 누군가 인생이 격리의 고통을 당한다면,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보내야 한다면, 무엇을 택배로 보낼까요? 시인의 성찰처럼, 모든 택배가 인생의 기본 생존을 위한 슬픔을 배달한다면, 신자는 살게 된 이유, 살아갈 소망인 부활을 힘입어 자기 인생을 통과한 고백을 보냅니다. 그 고백은 때로 따뜻한 목자의 격려와 기도로, 믿음을 가르치는 교사의 헌신으로, 안타까운 일을 만난 믿음의 동지애로, 뜨겁게 품은 부모의 애끓는 마음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사역자로, 목자로, 목원으로, 주일학교 교사로, 믿음의 동지와 친구로, 중보기도의 헌신자로, 예배를 섬기는 봉사로, 주차봉사로 서로를 향해 부활의 택배가 되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내년에도 누군가에게 더 기쁜 인생을 담은 부활의 택배가 되어주세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