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의 머리카락이 탐스러운 금발이었다면, 빈센트 반 고흐가 억만장자였다면, 악성 베토벤의 귀가 남들보다 훨씬 잘 들렸다면, 우리는 그들을 이만큼 애틋하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렇듯 우리가 타인에게 매혹되는 이유는 그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결핍에도 불구하고 그 결핍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정여울 작가의 “마음의 서재”에서 따온 문장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탁월한 사람보다 약점과 결핍을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혹됩니다. 탁월함은 사람들의 눈길을 훔치지만, 약점과 결핍을 인정하고 숨김없이 드러내는 태도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훔칩니다.
2주 전 저는 참 매력적인 사람들과 대화하며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우리 교회 초원모임이 있었고, 제가 한 초원의 목자님들 나눔에 참여했던 일입니다. 인도하시는 초원지기 장로님께서 그간 어떻게 지내오셨는지, 기도제목은 무엇인지 여쭈셨고, 목자님들의 나눔이 시작되었습니다. 초원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목자님들이 삶을 나누실 때마다 여러 번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유쾌한 분위기에 저 역시 몇 차례나 크게 미소 지었습니다. 초원모임이 끝나고 전도사님 한 분과 잠시 대화했습니다. “아까 제가 들어갔던 초원모임에서 어떤 얘기 했었는지 들리셨나요?” 전도사님은 듣지 못하셨지만, 분위기가 참 좋아 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초원모임에서 목자님들이 나눈 삶의 주제는 건강, 자녀, 직장, 재정이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고, 자녀가 잘 자라고, 직장이 잘 풀리고, 재정이 넉넉해서 그토록 여러번 웃음이 터져 나왔을까요? 물론 감사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님들이 고백한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목자님들은 무서운 질병, 치열한 자녀 양육, 버거운 업무, 재정의 결핍 속에서 분투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지 않고 성큼 일어나 한바탕 웃되 삶을 향한 분명한 집중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가 가진 삶의 실력 아니겠습니까? 삶이 무거워도 웃을 수 있는 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부르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마 11:28)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 믿음은 현실을 역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그날 목자님들의 삶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목장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이야기들이 증언되고, 확인되고, 도전되고, 확산되는 현장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또 하나의 새로운 목장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아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장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은 아픔 하나가 추가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곧 약할 그 때에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함께 하나님의 이야기를 집중해 읽어가며, 그 은혜를 따라 아픔과 결핍 중에도 한바탕 웃을 줄 아는 더샘물 언약 가족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조대섭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