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에 떠올리는 믿음 3 – 복상에서 일상으로
속담에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력 오뉴월은 양력 7~8월로 무더운 여름입니다. 이럴 때, 손님이 오면 대접할 음식도 마땅치 않고, 흐트러진 살림살이에 흉잡힐 일만 널려 있어 여름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풍속에선 부득이하지 않다면, 한 여름에 남의 집을 가는 것을 실례로 여겨 삼갔습니다. 하지만 올해 전 세계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오뉴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름에 방문객인 무서운 손님이 아니라, 여름 자체가 무서운 호랑이로 둔갑했습니다. 계속되는 폭염과 교차하며 찾아오는 습기 많은 여름비 그리고 열대야는 밤까지 이어져 몸과 마음을 흐트러뜨립니다. 늦은 밤, 더위를 식히려 등물을 끼얹듯, 깨어 있으려 했던 인생선배 한 사람을 이정표 삼아 우리 일상의 자리를 헤아려 봅니다.
조선 시대 성리학의 대가가 누구냐 물으면, 입을 모아 같은 해에 태어나 각각 일가를 이룬 퇴계 이황(1501-1570)과 남명 조식(1501-1572)이라 꼽습니다. 퇴계는 성리학의 원리를, 남명은 실천을 방점에 두고 살며 가르쳤습니다. 남명 조식은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가르쳤습니다. 자기를 가르치기 위해 그는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이 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뜻의 글자가 새겨진 ‘경의검(敬義劍)’을 평생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사사로움을 베어내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자신을 가르친 배움은 나아가 그 그늘에서 그 시대를 위한 많은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지형을 살피고, 왜구를 경계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연려실기술에 보면, 남명이 제자들에게 병법까지 가르치는 치밀한 준비를 시켰습니다. 남명이 생각한 지식은 책을 지나 현실로 나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남명 조식이 죽고 20년이 지나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남명 문하에서 최고의 의병장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제자 중에는 당시 58세였던 남명의 수제자 합천의 의병장 정인홍, 전란이 일어난 지 열흘이 되지 않아 의령에서 일어난 홍의장군 곽재우 외에도 합천의 박이장, 하혼, 삼가의 노홍, 이홍, 초계의 전치원, 곽준, 고령의 김면, 현풍의 박성, 성주의 이준민, 진주의 이정, 이로, 단성의 이유근, 김경근, 산음의 오장, 함양의 박여량, 안음의 조종로, 거창의 문위 등, 50여 명에 의병장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임진왜란때, 빠른 시간에 대규모 의병이 일제히 일어난 일은 남명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비교되는 병자호란 때에도 의병은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깨어 있는 한 사람은 그 배움을 가지고 책을 뚫고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평범한 일상이든, 위기이든 준비된 만큼 살게 합니다.
책을 뚫고 삶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남명은 오늘 우리의 거울입니다. 신자인 우리는 성경의 검을 품고 세상에 파송된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성경을 사랑하므로 순종하는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생명의 열매를 주십니다. D.L. 무디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 하나님을 알고, 세상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읽어내게 하는 일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성경의 약속을 근거로 현실을 사는 주의 사람, 현실에 엎드리지 않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가 성경을 뚫고 나온 사람, 세상이 보고자 하는 희망의 사람입니다. 복상은 일상을 살기 위한 준비입니다. 복상에서 일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세상에서 빛을 보려 하지 말고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빛의 영광된 부르심을 기억하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