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에 떠올리는 믿음 2 – 밤 견디기
“저인망의 어둠이 온다//더 많이 군데군데 별 돋으면서/가뭄 타는 들녘 콩싹 터져오르는 소리 난다//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솥검정 같은 이 더위를 반짝반짝 먹고 있다//보리밥에 짱아찌 씹듯/저 별들이 먹고 있다” [문인수 시인, 여름밤, 전문(全文)]
문인수 시인은 1945년생으로 1985년에 문단에 나와 20년 전쯤, 주목받았던 시인입니다. 무엇이나 빨라야 하는 때, 불혹(不惑)의 나이에 출발선에 서서 살아낸 인생의 족적을 천천히 한 걸음씩 남기셨던 분입니다. 빠르든지, 늦되든지, 자기 인생이 되어가는 것을 잘 지은 밥처럼 무심코 내어 놓아 나눕니다. 시인의 여름밤을 함께 먹어볼까요?
장맛비와 무더위가 교차하는 요즘,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또렷하다 합니다. 초여름, 여름, 초겨울 겨울. ‘덥다가 지독히 덥고, 춥다가 지극히 추운 사계절이 또렷합니다. 지금은 지독히 더운 여름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름 정오 뙤약볕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우리 뇌와 생각을 녹일 듯 달려듭니다. 시인의 말처럼, ‘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는 밤까지 따라와서 ‘저인망 어둠’에 우리를 가두려 합니다. 밤에 시원하게 잠들던 때는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 밤하늘에 떠서 길을 인도한다던 별들은 야수가 되어 반짝이는 눈으로 노려보며 우리의 의식을 먹고 있습니다. 마치 보리밥에 짱아찌 씹듯, 우적우적 가차없이 부숴버립니다. 더위에 솥검정이 되어버린 우리 생각들을 ‘반짝반짝’ 먹고 있습니다. 시인의 여름밤은 지난한 더위와 속수무책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 이야기입니다.
불면으로 깨어 있는 여름 밤.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모든 상황과 사건 앞에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회복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건강, 상실의 문 앞에서 인생을 안고 끙끙대는 사랑하는 사람들, 삶의 짐을 어깨에 진 사람들, 끝없는 과제들. 잠 못 드는 이유는 그 출구 없는 사람들의 인생과 문제와 불안 때문입니다. 우리 만 이런 밤을 보낸 게 아닙니다. 믿음의 선조들도 동일한 불면으로 끙끙거렸습니다. 이런 시절 드린 저녁기도가 시편 4편입니다. 곤궁함에 빠졌을 때, “의로우신 하나님, 응답하소서(1)”로 시작된 기도는 자신의 막다른 골목에서 주께 헌신하는 자를 각별히 돌보시는 주를 기억하며 나아갑니다(3). ‘분노에 머물지 않도록 안내’하고(4), ‘주를 의지하라’ 도전합니다(5). 잠들기 전, 신자의 하늘에는 또 다른 별 하나가 떠 있습니다. 이 불면의 여름도 지나갈 겁니다. 매일 우리를 ‘반짝반짝’ 씹어 먹는 불안에 먹히지 않으려고, 하늘에 구비구비 펼치신 약속의 별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내가 편히 눕고 잠들게 하소서.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소서(8).”
신자는 이 기도 후에 밤의 세계, 잠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재창조하는 시간. 그 시간이 없다면, 약속으로 눈 뜨는 우리의 아침은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거두어 들이시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오시는 주의 신비는 지독한 연약함에 무너지는 여름밤이 아니라면 맛볼 수 없습니다. 시인처럼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7).” 아멘.
여름 밤에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