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식구(食口)입니다

요즘 무더위와 장마가 반복해서 찾아오고 있습니다. 더위와 습기가 반복되는 지치기 쉬운 날씨입니다. 여름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여름의 더위가 견디기 어렵다 하고, 또 누군가는 겨울의 추위가 버티기 쉽지 않다 합니다. 저도 어느 한 의견에 동의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견딤의 밝은 면과 버팀의 어두운 면이 있을 겁니다. 인생이 견디기 어려운 여름더위와 습기같고, 버티기 어려운 겨울 추위같을 때가 있습니다.

소설가 폴 오스터의 장편소설 [어둠 속의 남자]에 보면, 은퇴한 72세의 도서 비평가 브릴이 나옵니다. 그는 얼마 전 아내를 잃고 교통사고까지 당했습니다. 그 충격은 그에게 매일 밤 지독한 불면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매일 밤, 이야기를 만들어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겁니다. 이야기가 불면의 고통을 이기는 길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자주 고통을 넘어서게 합니다.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해석할 힘을 제공합니다.

신자들의 인생은 더욱 그렇습니다. 더샘물교회는 매일 함께 이야기를 먹는 식구(食口)입니다. 우리가 함께 먹는 이야기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살아갈 날들의 희망을 확인시켜 줍니다. 어느 날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핏줄에는 피가 아니라, 이야기를 돌고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석된 우리 삶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상처를 상처 그대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폭풍이 예고된 바다에서 배가 항구로 돌아오듯, 폭풍이 지나간 바닷가에서 부서진 배를 고치듯,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인생이라는 배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고통없는 사람, 사연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돌아앉아 주의 이야기를 밥 삼아 고통을 함께 이기는 식구(食口)라는 걸 확인할 때, 알게 됩니다.공동체는 함께 동일한 말씀을 먹고, 먹이면서 세워져 갑니다. 시쳇말로 ‘인생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인생은 예수의 이야기에 들어갈 때, 전혀 다른 인생의 서사(敍事)를 써 내려갑니다. 칠흑 같은 밤, 희망의 불이 켜집니다. 생명의 노래가 들립니다. 거기서 거기인 인생 같아도 전혀 다른 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지난 상반기 작은목자훈련에 참여해서 성경이야기를 함께 먹고,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이만큼 걸었습니다. 수료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걸음으로 여름사역을 통해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영아부 여름예품학교, 유아유치부, 유년초등부 여름성경학교 그리고 중고등부 여름수련회를 통해 우리 자녀들이 주님 지어 주신 맛난 생명의 밥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식구(食口)가 되어 쑥쑥 자라가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이 여름을 견디고, 버티는 방법은 우리 세대와 다음세대가 주의 말씀을 함께 먹는 식구로 사는 겁니다. 잘 드시고, 우리 자녀들이 잘 먹고 크도록 기도해주세요.

더샘물 식구들 생각으로 가득한 밤에,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