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생애, 주께서 반할 만 하오

“꽃이 지니 몰라보겠다.//용서해라./蓮.” [시인 윤제림, ‘목련에게’ 전문(全文)]

시치미 떼는 시를 잘 쓰는 시인 윤제림이 지는 연꽃을 보며 지은 두 연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입니다. 시인에게 연꽃은 단순히 연꽃이 아니라 연꽃으로 상징된 어떤 사람입니다. 시인에게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어머니, 아내 혹은 인생이 꽃처럼 피었다 진 누군가의 인생일 겁니다. 어머니들은 종종 말씀합니다. ‘내가 이제 시든 꽃 같구나.’ 우리는 헤아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위로가 필요합니다.

꽃은 그 생애의 어디일까요? 꽃이 피는 시절은 꽃나무의 전성기가 아닙니다. 싹이 돋고, 가지를 올려 눈부신 빛깔의 꽃을 피웁니다. 잎이 나고 무성해지고 꽃이 시들 때, 씨앗이 들기 시작합니다. 꽃은 빛깔도 곱고 향기롭지만,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면 꽃은 공허합니다. 꽃은 꽃으로 아름다우나 반드시 집니다. 꽃나무에겐 꽃이 지는 게 슬프지 않습니다. 또 다른 성숙과 성장의 경이로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꽃에 자신을 투영한 사람만 슬퍼합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꽃같지 않고 나무 같습니다. 싹이 나면 싹이 나서 기쁘고, 꽃이 피면 꽃피워서 감탄하고, 꽃이 지면 열매가 깃드는 과정이 경이입니다. 잎에 단풍이 들면 그 온 빛깔이 놀라움을 주고, 잎에 떨어질 때, 그 낙하(落下)의 무게가 나무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겨울을 ‘겨우살이’ 하면서 속으로 성장하며 나무는 일기를 씁니다. 속으로 나이테를 만드는 겁니다. 나무는 나무의 모든 시간이 있어야 나무입니다. 꽃의 시간은 짧고 나무로 만들어지는 시간이 길고 깁니다. 참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믿음의 어머니요, 아버지되신 모든 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부모님은 나무 같습니다. 나무는 나무로 만들어지는 사계(四季)를 지나고 또 지나 묵묵히 거기 서 있습니다.

자녀들은 인생 나무이신 부모님을 압니다. 나무로 오롯이 세워진 그 시간의 그늘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모든 자녀된 분들에게 권합니다. 부모님이 “내가 요즘 시든 꽃같구나” 하시거든 오늘 이렇게 말을 건네면 어떨까요?

부모님이 걸으신 길은 찬사 받아 마땅합니다. 잘 살아오셨다고, 그 성실했던 믿음의 생애에 박수가 필요합니다. 시든 꽃을 한참 들여다본 또 다른 시인 황선하는 말합니다. 시들어가는 꽃 같은 인생을 향해 ‘입술에 닿은 깃털의 촉감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이라고 지혜를 나누어 줍니다. “아직 햇빛이 반할 만 하오.” 성실한 생애의 등을 가진 모든 부모에게 건네 줄 대사입니다. 마음담아 연습하며 입에 되뇝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대 아직 햇빛이 반할 만 하오.”

2022년 어버이주일에,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