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을 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즐거운 결혼식 중에는 빵과 포도주를 아끼지 않고 실컷 먹는다. 나중에 허리띠를 졸라맬 일이 있을 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신랑신부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즐겁게 보내는 법이다. 정겨운 축하의 모닥불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마가복음2장19절, Eugene Peterson역]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대조 속에 사는 지 생각하게 됩니다. 염려와 안온, 질병과 치유, 불안과 평안, 슬픔과 기쁨, 분노와 웃음…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코로나 오미크론 확산이 멈춤!”이라는 소식, 두려움이 기쁨의 대조로 바뀌는 일입니다. 곧 그 날이 옵니다. 민감한 조심성을 높이되 염려는 내려놓는 대비가 필요합니다.
지난 2월4일이 입춘이었습니다. 24절기가 시작되는 첫 절기입니다. 절기는 입춘, 봄에 들어섰는데 지난 주 내내 가장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우리의 몸이 느끼는 계절과 절기가 가리키는 계절은 너무 다릅니다. 어떤 게 옳을까요? 봄이 왔다는데 기온은 영하10도입니다. 느낌을 믿어야 할까요? 절기가 가리키는 전조를 따라야 할까요? 걸작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이야기의 장치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들고 있는 소품 하나, 그림 하나가 이야기가 엮어지는 복선 속에 배치된 전조 메시지입니다. 기온은 겨울인데 시장에는 봄나물이 벌써 가득합니다. 우리 인생의 이야기에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었던 때처럼, 큰 재난의 때를 기억하며 금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책망하듯, 예수께 묻습니다.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느낌도 전조도 아닌 생생한 현재로 대답하십니다. “우리는 즐거운 결혼식 중이다. 나는 신랑이다.” 이 놀라운 뒤집기는 예수가 계시는 임재의 때는 늘 즐거운 잔치의 때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 예수가 계시는가?”입니다. 예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소식입니다. 한국에는 손흥민을 응원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대조가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손흥민이 골을 넣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입니다. 골을 넣는 영상을 봤습니다. 골을 넣는 순간, 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승리의 골을 보는 것과 소식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소식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느낌과 감각을 소식에 맞추어야 합니다. 승리했을 때 좌절하지 않는 것처럼, 겨울을 뚫고 가지만 이미 봄이 왔습니다. 계절도, 인생도 예수를 봄으로 봄입니다.
또 일상에 수많은 인생의 대조가 밀물처럼 덮쳐올 것입니다. 그때 느낄 혼돈과 불안과 어지러운 상황과 그 소음 속에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느낌이 아니라 소식이 기준이다. 상황이 아니라 상황 속에 계신 예수가 기준이다!” 그러면 신랑 예수와 함께 잔치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 일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느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소식을 간직한 성도들, 그 믿음에 파이팅!
믿음으로 파이팅 넘치는 여러분과 함께 있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