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피아노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복작이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가끔 아무도 모르게 도- 도- 하고 우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까닭 없이 낼 수 있는 음 하나 정도는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 어쩌다 어릴 때 음악 따윌 배워 그 울음의 이름을 알게 됐으니, 조금은 나도 시대의 풍문에 비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애란 소설, ‘도도한 생활’ 일부 발췌]

김애란의 두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김애란은 80년생 작가입니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은 건 우연이었지만, 계속 읽게 된 건 작가의 가족을 향한 시선과 삶의 자세 때문입니다. 작가의 많은 작품에 가족이 나옵니다. 작가의 20대가 많이 녹아 있는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에 언니, 남동생, 엄마, 아빠 같은 가족 구성원이 유독 가족이 많이 등장합니다. 설 명절을 쇠기 전에 소설이야기 잠깐 할까요?

밀가루가 분분(紛紛)히 날리는 좁아 터진 만두 가게, 생계와 주거 공간의 분리도 어려운 좁은 곳에 엄마는 꾸역꾸역 피아노를 들여 놓습니다. 그건 피아노가 아니라 언젠가 고단한 생계 끝에 닿아보려는 인간 존엄의 경지입니다. 없으면 시들게 되는 바로 그 희망입니다. 주인공의 엄마는 딸이 학원에서 배운 피아노 연주를 청해 듣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잘못된 빚보증으로 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아빠는 고향으로, 엄마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주인공은 대학에 다니기 위해 반지하에 자취하던 언니집으로 갔습니다. 거기 피아노도 따라왔습니다. 빚쟁이에게 피아노는 빼앗길 수 없다는 엄마의 생각이 만든 일입니다. 주인집 눈치 때문에 음계 하나를 제대로 칠 수 없는 ‘반지하에 피아노’는 분명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친 어느 날, 반지하가 물에 잠깁니다. 물은 아무리 퍼내도 무릎까지 차오릅니다. 주인공이 피아노뚜껑을 열고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고 어떤 음 하나가 긴소리로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소설 ‘도도한 생활’은 삶의 비루함과 희망에 대해 말합니다.

설 명절은 흩어졌던 가족들의 희망과 도도한 생활이 함께 만나는 시간입니다. 각자의 피아노가 연주됩니다. 거칠게, 부드럽게 삶의 주조음들이 울리고 섞일 겁니다. 위로하는 일, 새해를 희망하는 일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할 일은 기도입니다. 만남을 반가운 만남으로 바꾸는 지혜와 능력을 구하는 일입니다. 신자는 인생 존엄의 피아노가 예수로 바뀐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예수를 들여놓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존엄과 희망의 주조음은 예수입니다. 예수로 위로 받고, 예수로 위로를 준비하세요. 가족들도 예수라는 피아노 들여놓으시고, 그 도도한 주조음을 울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명절마다 드는 마음입니다. 예수로 섬기고 예수를 주조음으로 울려내는 가족들을 상상합니다. 내일부터 시작입니다. 설 명절 잘 쇠세요. 샬롬.

2022년 설 명절을 앞두고,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