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이 일어난 지 102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삼일절을 기억하며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당시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에 기독교인의 참여가 적극적이고 광범위했습니다. 하여 일본제국의 박해도 다른 종교에 비해 컸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제암리 교회입니다.
일제는 아예 예배당에 문을 걸고 불을 질러 한꺼번에 29명을 희생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1919년 3·1운동으로 한 달 늦게 10월 4일에 열린 장로교 제8회 총회에서는, 사살·타살 52명, 체포된 신자 3,804명이나 된다 보고하였습니다. 당시 목사, 장로는 134명으로 장로교 전체 목사, 장로 수 1,024명 중 13%나 되는 교회지도자들이 핍박을 당했습니다. 당시 기독교의 교세는 천도교의 1/10 수준이었습니다. 1919년 당시 인구가 1,600만명이었는데, 기독교인은 약 20만명이어서 전체인구에 1.3%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세운동에는 당시 기독교 인구의 40%나 되는 약 8만명이 참여해서 당시 전국적으로 온 교회가 이 일을 교회의 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기독교가 민족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인은 여러가지입니다. 구한말부터 누적되기 시작한 요인들은 을사늑약 파기운동에 앞장선 교회의 종교적 자유를 분쇄하려던 일제의 탄압으로 점증됩니다. 일제는 교회의 예배를 방해하고 설교를 검열했습니다. 특히 금주와 금연에 관한 설교나 ‘다윗과 골리앗’을 주제로 한 설교도 감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1911년 ‘105인 사건’은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께 암살모의의 누명을 씌워서 기독교 지도자 105인을 체포했습니다. 1915년에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포교법을 제정하여 기독교 학교의 성경공부와 채플 등을 금지하고 선교를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만세운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3·1운동의 만세 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가 작성한 「독립단 통고문」을 뿌렸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매일 3시에 기도하고, 주일은 금식하고,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월요일은 이사야 10장(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화요일은 예레미야12장(유다 멸망은 범죄한 백성때문이다), 수요일은 신명기 28장(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받아 고통받게 되리라는 예언), 목요일은 야고보서5장(고난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와 인내를 권면함), 금요일은 이사야 59장(죄 지은 백성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예언), 그리고 토요일은 로마서 8장(성령이 주시는 생명, ‘지금 겪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비견할 수 없다’)을 읽었습니다. 3.1운동은 민족을 살리는 길이 신자의 정체성에 근거한 신앙운동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1.3%밖에 안되는 한 줌의 종교인 기독교는 절망하는 어둠의 땅 스불론과 납달리에 비췬 예수의 빛을 나타냈습니다. 3.1운동에 참여한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2021년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한 주님의 소금입니까? 주님의 빛입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3,14).”
2021년 3월 1일
여러분과 함께 삼일절을 기억하며,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