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1923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98년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 그 이후의 다양한 격동기를 보냈습니다. 그사이 70 여 년을 묵묵히 한 교회를 지키며 교회의 지도자들과 각 가정의 기도제목을 붙들고 기도의 사람으로, 교회의 산 역사로 살았습니다. 평생 홀로 지냈습니다. 조카들을 자녀처럼 여기며 권면과 기도와 관심으로 돌본 어머니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 손자녀들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기도했습니다. 한 어머니의 생애입니다.
두 주 전 주일 새벽에 소천하신 한 어머니(백향숙권사님의 이모님)의 약사(略史)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참으로 평범합니다. 하지만 신자의 생애는 보석처럼 귀합니다. 장례에 참여하면서 인상적인 것은 이모님을 보내는 조카들이 아니라, 어머니를 보내는 자녀들로 상주의 자리를 지킨 백권사님을 비롯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이토록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자녀들이 또 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문상객들의 증언 때문에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출석교회 담임목사님은 어른의 삶이 교회의 살아 있는 역사라며 부목사님께 적어 기록으로 남기게 했고, 어느 해 임직되신 장로님들은 권사님의 집 문 앞 계단공사를 첫 사역으로 하시길 원하셨답니다. 물론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권사님의 기도로 교회가 섰기에, 그 기도가 멈추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문상객은 41세의 성도였습니다. 98세 어른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 궁금했던 가족들에게 알려준 일화는 이렇습니다. 태어날 때 위태롭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한동안을 지냈습니다. 그 때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그 기도응답으로 아기는 잘 자랐습니다. 이 분의 자의식 속에는 교회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성장하면서 교회를 지날 때마다, 어른이 오라 하셔서 등을 토닥이면서 주위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이 눔이 그 눔이여”
정겨운 말씀은 그 꼬마의 삶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살면서 수 천 번을 들었다 했습니다. 인큐베이터의 갓난아기가 마흔이 넘기까지 자신과 자녀세대를 위해 기도해 오신 교회 어머니를 눈물로 회상했습니다. 이제 그 98년 교회어머니는 이 땅의 믿음의 생애를 멈췄지만, 그 믿음의 아들, 딸들의 생애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어질 겁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밤하늘의 별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자녀가 예수제자의 길을 가기까지 기도의 자리, 침묵의 자리, 사랑과 희생의 자리,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는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철없던 자녀가 믿음으로 철들어 가는 동안 그 변화를 인내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마흔 한 살의 성도처럼, 모든 믿음의 아들, 딸들이 한 사람의 신자로, 예수 믿는 시민으로 성장합니다. 교회와 가정의 부모로 또 누군가를 위한 기도의 인큐베이터가 될 것입니다. 98년동안 거기 교회의 기도의 어머니로 계셨기에 또 한 사람의 생애가 믿음으로 열렸습니다. 더샘물교회와 가정의 부모된 이 여러분, 몇 년의 생애를 살든, 그 일상 안에 누적될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부모된, 그리고 부모될 이들에게 이 헌사를 바칩니다. – “거기 계셔 주셔서, 또 거기 믿음과 기도의 부모로 계셔 주실 것을 믿으며 감사합니다.”
2020년 5월 10일
어버이주일에,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