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질서 있게 살아요

 

 

어제 정부가 다시 탄력적 개학연기 발표를 했습니다. 이에 교회는 어제 당회와 운영위의 결정을 따라 3월 29일, 4월5일 주일까지 온라인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결정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사태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가정마다 새로운 풍속도가 쓰여지는 중입니다. 해는 봄만큼 부지런 해져서 겨울을 벗겨낼 인사로 창을 밝히는데, 집은 코로나19가 시작된 겨울에 멈춰 있습니다. 아이들은 더 게을러졌고, 부모는 아이들 챙기랴, 바뀐 일상에서 부모 몫을 다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돌아봅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를 살아갑니다. 힘겹고, 즐겁고, 기쁘고, 무거웠던 과제들을 끌어안고 일상을 살아내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후손들이 자랑할 만한 혹은 수치스러운 사건들이 퇴적되어 역사는 형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읽을 때, 희망의 미소와 절망의 한숨이 교차하는 것은 역사는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맨 얼굴로 우리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먼저 걸은 발걸음이 잘못된 길을 걸었다면, 뒤따르는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아야 합니다. 길을 낸 발자국이 또렷하고 분명하게 복된 길을 따라 갔다면, 우리도 그 길을 가면 됩니다. 옛사람들은 일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여기 엿볼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때 소옹(邵雍1011-1077)이라는 사상가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복을 두 가지로 나누어 제시했습니다.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입니다. 열복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복입니다. 성공과 출세와 재물을 얻는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청복은 사소한 것에서 얻는 ‘청아한 행복’으로 소소한 일상에서 모두가 얻을 수 있는 복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시로 지어 후대에 남겼습니다. 소옹이 어느 날 밤, 저녁까지 책을 읽다가 문득 밖으로 나왔습니다. 거기 맑고 고요한 밤이 있었습니다. 달빛이 그윽하고, 바람이 붑니다. 그 사소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의 의미를 붙잡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옮긴 시가 [청야음(淸夜吟), 맑은 밤에 읊조린 시] 입니다.

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
“달은 하늘 끝에 닿아 새벽을 보려 기웃/ 바람 불어와 수면 위를 핥을 때/이 사소한 것이 지닌 맑은 의미여/ 헤아려 아는 이 너무 적구나”
[소옹, 청야음(淸夜吟), 맑은 밤에 읊조린 시, 전문(全文)]

 

천년 전, 일상의 복을 생각했던 선현이 있었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복이지만 헤아려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분주하게 달려가던 모든 세계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멈춘 것 같은 요즘, 그래서 일상의 의미가 더 소중해졌습니다.

성경은 3,000 여년 전 일상의 중요성을 알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신자는 성경이 고백한 역사의 옛 길을 따라 걷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길을 따라가볼까요? 하나님이 보여주신 약속의 길인 토라의 안내표지판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었던 신자들의 고백집이 시편입니다. 시편은 고백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시편1:1-2)

여기 복된 사람의 비결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율법’이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을, 우리는 신자가 목적 있는 일상을 산다고 말합니다. 복된 사람의 비밀은 소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부르신 목적을 불어넣는데 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잔소리와 실랑이하는 피곤한 일상을 견디는 일은 티가 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의 신자들도 그 일상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보석은 바람 한 점 없는 무고통과 무고민의 시대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미친듯이 부는 시대의 바람 속에서 무거운 삶의 풀무 속 그 뜨거운 일상에서 하나님의 길을 걸어간 순종의 결정체가 시편의 고백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시편1편1-2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 밖에. 죄악의 소굴에 들락거리길 하나, 망할 길에 얼씬 거리길 하나, 배웠다고 입만 살았길 하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밤낮 성경말씀 곱씹는 그대!”

 

이 시편의 신자는 매일 성경만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을 기준삼아 일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더샘물이 추구하는 신자의 모습이 여기 있습니다. 잠깐, 분주한 우리 일상을 돌아봅시다. 왜 아이들을 집에서 돌봐야 합니까? 코로나19로 주어진 시간이지만, 동시에 긴 시간 목적 안에서 함께 하도록 초청하신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소중한 목적으로 소소한 일상을 채워 가시지 바랍니다. 시간은 나무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처럼 어느 덧 지나갈 것입니다. 남는 것은 살아낸 세월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개인, 믿음의 가문, 믿음의 공동체의 역사를 씁시다.

가만히 기도하고 눈을 뜨면, 이 사소한 것들이 지닌 맑은 의미가 보일 겁니다.
고요히 귀를 열면,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녀들의 일상에서 자라는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 일상을 살아 믿음의 역사를 함께 쓰는 더샘물 가족들, 파이팅!

 

2020년 3월 18일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일상을 사는,

이찬형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