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설을 맞이하며 나눈 마음을 다시 찾아 읽다가 나눕니다. 가족이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이름때문에 설 명절을 또 맞이하는 지 모릅니다. 설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이 오가는 훈훈한 때입니다. 가족은 누구에게는 기쁨이지만 어느 시인처럼 맞이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밖에선/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집에만 가져가면/꽃들이/화분이//다 죽었다”

[진은영, ‘가족’ 전문]

시인은 본질을 관통하는 관찰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시인은 한국의 가족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한국의 가족사에는 사랑하기에 함부로 무례해서, 그 무례함의 켜가 오래되어서 서로 상처주는 가족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화해 하려다 사랑 때문에 상처가 덧나는 사랑의 아픈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때가 명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언약가족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집에만 가져와도 꽃들이, 화분이 생기를 찾게 되는 언약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물론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가족입니다. 축복합니다. 하지만 그 언약가정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 중에 헬리콥터를 타고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밟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압차이로 심장이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등산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서 정상을 향하듯이, 언약가정도 한 걸음씩 주님의 약속을 믿으며 걸어서 성장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사랑으로 걸어낸 한 걸음은 배우자에게 사랑이 깃들게 하고 그 슬하에서 자녀를 기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사랑의 언약가족으로 초청하셨습니다. 매일 일상을 부르심의 목적 안에서 걸으며 믿음의 삶과 세상의 요구라는 기압차이를 극복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세상사이를 헐떡거리며 왕복달리기를 하던 심장은 예수로 훈련되어 사랑으로 고동칩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섬김입니다. 섬김은 영적인 전투입니다. 내 본성 안에 있는 사랑으로는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 본성은 섬김을 받기만 하려합니다. 우리의 본성의 사랑은 파산 당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주님께 배워 공급받으며 그 주신 사랑이 고여야 사랑은 나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일용할 사랑을 주소서’ 그러면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겸손해지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 자라갑니다.

더샘물의 언약가족 여러분, 명절에 가족을 만날 때 예수의 참 사랑을 준비하세요. 밖에서도 어깨가 처진 가족에게 내 잘난 뻐김이 아니라, 예수의 위로가 깃들도록. 부모와 자녀들에게 말과 기도와 모든 마음으로 축복하세요. 그 생명의 꽃이 제 향기를 내도록 북돋우세요.

2020년 1월 26일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 여러분과 함께 함을 기뻐하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