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중에 건강진단을 받으러 갔습니다. 올해는 대장내시경을 받는 해라서 그 절차에 따라 몸을 준비하고 진단에 임했습니다. 병원에는 저희와 비슷하게 연말까지 밀려서 마지막에 진단을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진단을 받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름과 그 이름 밑에 붙여지는 그 사람의 정보 – 건강하다,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다 –를 들고 그 사람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네, 하고 픽 혼자 웃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모습입니다. 지난 주중에 이런 뉴스가 있었습니다. 16일 마트에 들어가 식료품을 훔친 ‘현대판 장발장 부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편의점에 들어가 빵과 사과 등을 훔치다가 CCTV를 보고 있던 마트 직원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 사람의 이름과 그 이름 밑에는 ‘절도범’이라는 정보가 수식어로 붙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되려면, 그 정보 뒤에 있는 그 사람을 마주하는 사람, 그 사람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경찰관이었습니다. 경찰관은 하루에도 수 십, 수 백 건의 사건을 만나고, 그 사건은 정보화됩니다. 어쩌면 일선 경찰관은 그런 일에 최적화된 사람이고, 그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30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배고픔을 참다 못해 저지른 범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6개월 전까지 택시 기사를 했지만 당뇨와 갑상선 질병으로 일자리를 잃고 요양에 들어갔고 홀어머니, 아들 둘 등 네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마트 사장님은 용서해주었고, 경찰관은 데려가 국밥을 사주었습니다. 또 마트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한 주민은 현금 20만원을 찾아와 부자에게 건네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그 경찰관은 인터뷰를 하면서 “요즘 밥 굶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눈물을 훔쳤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성금, 방한복, 쌀, 우유, 직접 담근 김치 같은 마음 담긴 선물이 전해졌습니다. 참 따뜻한 성탄 소식입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모든 사람은 죄인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한 범죄자, 전과를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그 전과자 중의 한 사람이 되시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범죄한 정보를 조회해서 전과자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고통 한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새로운 인류의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장발장이었던 우리는 또 우리 곁에 있는 장발장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준비합니다. 예수를 따라 그 마음을 품어 더 이웃의 곁으로 다가가는 일, 함께 하는 따뜻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일이 성탄을 기리는 이유입니다.

“때가 되자,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한 특권을 버리고 종의 지위를 취하셔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셔서,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신을 낮추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분은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심없이 순종하며 사셨고, 사심없이 순종하며 죽으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참혹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빌2:6-8, 유진 피터슨 역)

2019년 12월22일

대강절(待降節) 넷째 주일을 함께 맞이하며,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