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그대 창문 앞까지 갔었네/불밖에서 그대 불빛 속으로/한없이 뛰어들던 눈송이 송이/기다림 없이 문득 불이 꺼질 때/어디론가 휘몰려 가던 눈들//그대 눈 그친 아침에 보게 되리/불빛 없는 들판을/홀로 걸어간 한 사내의 발자국과/어둠을 익히며/한참을 서 있던/더 깊은/더 춥던 흔적을.”  [김용택, 흔적, 전문(全文)]

김용택 시인의 별명은 섬진강 시인입니다. 40 여 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퇴임 직전, 제가 섬겼던 학교에 오셔서 학생들과 문학에 대해 대화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이고 시구(詩句)가 부드럽습니다. 읽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 시인들이 있다는 게 좋다.’ 고단한 세상을 사는 동안, 누군가 끊임없이 인생의 기쁨과 눈물 그래도 살아갈 이유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특권이 있어 좋습니다. 가끔 마음대로 읽고 생각하는 오독(誤讀)은 독자의 특권입니다.

저는 이렇게 맛있게 ‘오도독’ 오독(誤讀) 했습니다. 시인이 기다렸던 사람이 연인인지, 학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시인은 밤새 기다렸고 아무도 보지 못한 채, 눈송이 송이 아래로 흔적만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인생에 밤이 내리고 겨울의 창백한 추위에 하얗게 질린 밤, 우리 창문 앞에서 매일 기다렸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주님은 고통 당했던 우리 ‘어둠을 익히며’ 우리 인생에 한참 서 있던 분, 우리를 만드셔서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라고. 그분의 기다림과 그 분의 셀 수 없는 서성거림의 흔적이 결국 우리를 예수사랑을 아는 연인(戀人)이 되어 주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된 깊은 사랑을 알게 하셨다고. 예수는 우리 구원의 흔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다닙니다.”(갈6:17)

흔적(스티그마)은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 안에서 노예나 죄수 그리고 범죄자의 몸에 찍는 일종의 낙인(烙印)이었습니다. 이것은 치욕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흔적을 지녔습니다. 그의 삶에 난 흔적은 예수께 순종한 삶 때문에 생긴 고난의 상처입니다. 바울은, 마치 전리품인 것처럼, 자랑합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삶을 이전 유대교에서 분리했고, 자신을 통해 세상에 전해진 십자가는 VIP를 구원해서 세상의 궁극적인 폭력인 죽음으로부터 분리해서 영원한 삶을 살게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주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낡은 옛 세상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세계 – 구원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르심 때문에 얻은 고난의 흔적을 자랑입니다. 그 흔적(스티그마)은 신자에게 십자가가 모든 것의 중심이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생명을 누리게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가 누리는 이 예수의 흔적을 VIP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예수의 흔적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랑입니다. 고난과 어려움 중에도 우리를 살게 한 그 예수의 흔적을 전해줍시다. 기도하며 준비하고 마음을 담아 VIP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만남이 VIP를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초청의 손길 한번이 인생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을 성취하게 할 것입니다. 이 영원한 흔적을 가진 우리 신자의 소중한 선물 – 예수를 고이 전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