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사시나요? 무엇을 응시하고 사시나요? 작가들은 종일 자신의 자식 같은 작품을 구상하고 그것을 들여다봅니다. 소설가 김훈은 2000년 겨울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가서 하루 종일 우두커니 장군의 큰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오곤 했답니다. 그리고 칼이 말해주었을 때 명문장들로 빼곡한 소설 [칼의 노래]를 써내려 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요한 시선은 임진왜란이라는 국난(國難)의 시대를 날카롭게 재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김훈은 자신의 산문집[내 젊은 날의 숲]에서도 얘기했습니다. “나는 눈이 아프도록세상을 들여다보았다.” 그 집요함에 우리는 그를 소설가라고 호칭합니다. 또한 6개월동안 하루 종일 탁자 위에 놓인 물 한 잔을 관찰했던 시인도 있습니다. 그 시인은 6개월 후에 [물에 대하여]라는 시 한 편을 썼습니다. 그 치열한 시선이 그 사람을 시인으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말년에 수련 만을 그린 모네라는 화가는 백내장으로 흐려진 눈을 고쳐 뜨고는 매일 수련을 바라보았습니다. 매일 수련을 그렸습니다. “모네가 가진 것은 눈 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 화가 세잔이모네를 향하여 한 말입니다.
집요함, 치열함, 거두지 않는 시선. 이것이 세상이 인정한 이 거장들의 공통점입니다. 저는 이 거장들의 대열에 신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목적을 따라 사는 이가 신자입니다. 이것이 열왕기 상 3장에 그려지는 솔로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신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무엇을 원하시는 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집요하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 거장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처럼, 이 믿음의 사람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삶의 자리는 항상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낙담과 좌절이 삶의 씨줄과 날줄인 것처럼, 우리 삶을 초라하게 직조해갑니다. 그때 그 비루하고 평범한 일상의 자리를 비범한 믿음의 자리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 늘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입니다. 그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은 의식의 세계에서 수많은 판단과 말들 사이에서도, 무의식의 세계에서 수많은 뒤채이는 꿈들 사이에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세상의 뒤채이는 문제들, 그 뒤엉킨 실타래들을 풀어갑니다.
열매가 맺기까지 겨우 사는 계절인 겨울에는 남은 뿌리로 버티고, 봄엔 여리디 여린 싹과 새순들의 몸부림치는 불안을 살아내고, 수많은 천둥과 장마의 빗줄기, 타 들어가는 뙤약볕과 지리한공기를 걸어 여름을 통과해야 비로소 가을을 만납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 어떤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을 통과할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집요함이 가정을 믿음으로 세우며, 주님을 붙드는 치열함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좌절과 낙담을 이기고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할 것입니다. 이 한 주간을 보내면서 더샘물가족들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전성기를 묵상하면서 발견하는 이 놀라운 교훈이 모든 더샘물가족들에게 있었으면, 이 소망이 현실로 영글었으면하는 밤, 저의 하늘엔 여러분의 얼굴이 별처럼 반짝입니다.
2019년7월 12일
여러분의 목사됨을 영광으로 여기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