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뒤에 읽을 수 있는 소설
2114년에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작가 ‘한강’입니다. 한강은 자신의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연한 기회에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 속 사건을 꺼내 가슴에 넣고는 몸살을 함께 앓는 소설가의 호흡을 느꼈습니다. 메시지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아픈 시대를 품고 해석하려는 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이 작가를 ‘올 해의 작가’로 선정한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입니다. 이 단체는 ‘올 해의 작가’상을 주면서 이상한 일을 함께 주문했습니다. 그것은 100년 후에 읽힐 소설을 쓰는 일입니다. 작가란 동 시대를 끌어안고 호흡하고 그 시대를 해석하며 절망과 희망을 말하는 이야기꾼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마치 아이를 잉태하고 낳은 자기 분신 같은 소설을, 자기가 없는 미래 가상의 독자들이 읽도록 선뜻 내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작가 한강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진행했습니다. 2014년에 시작된 미래 도서관 사업은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이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일은 2014년으로부터 100년 뒤인 2114년에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 기획자인 케이티 페터슨(Ketie Paterson)은 한강작가를 ‘올 해의 작가’로 선정한 이유를 “인류에 대한 명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녔고, 인간의 실존, 존재, 아름다움, 상실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문제와 그 해결을 다음세대에 이야기할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다 사라진 100년 뒤에도 남아서 다음세대에게 힘이 될 이야기 말입니다. 기사를 보며 상상하면서 저도 그 자리에 참석해보았습니다. 작가는 지난 5월25일(현지시간) 제목만 공개된 미공개소설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 원고를 들고 울창한 가문비 나무 사이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100년 후, 그들이 섰던 노르웨이 노르드마르카 숲에서 100년을 자란 1000그루의 나무를 종이로 만들어서 미래의 책이 100년의 과거시간을 딛고 출간될 것입니다. 그들은 2019년 5월25일 노르웨이의 푸른 봄날, 30초동안 침묵하며 노르웨이 숲의 바람소리, 새소리, 벌레소리를 들으며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한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빛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뎌야만 하는 순간을 기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마 이 프로젝트는 백 년 동안의 긴 기도에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나는 이 순간 느끼고 있다.” 참 무거운 여운이 남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100년 후의 후손들에게, 아니 30년 후의 당신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요? 당신이 그토록 추구하는 빛은 무엇인가요? 그 빛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그 불안과 간절함이 뒤섞인 기도는 무엇인가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 찰라의 시간, 너무나 짧은 우리의 수명 그리고 인생의 불확실함에 대하여 예수는 말을 걸어옵니다. 영원한 현재형으로, 우리 인생에 없는 놀라운 인생문법으로. 오늘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교회가 노르웨이 숲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문비 나무사이를 걷듯이, 진리의 나무 사이를 걸으면서 툭 던져진 질문의 여운에 바람소리, 새소리, 벌레소리를 들으며 100년 뒤를 준비하는 1000그루의 나무가 심겨진 자리에서, 소설이 아닌 진짜 미래를 이야기하는 영원한 현재형 이야기를 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연처럼 만난 지금 이 자리가 여기 있는 현재부터 100년의 미래를 준비하는 영원한 현재를 함께 누리는 첫걸음이기를 바랍니다.
2019년 6월 2일
마음 다해 여러분을 환영하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