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서 꽃 피우는 사람

“점심 시간 후 5교시는 선생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숙직실이나 양호실에 누워 끝도 없이 잠들고 싶은 마음일 때,/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참꽃같이 맑은 잇몸으로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이 철 덜 든/나를 꽃피웁니다” [안도현, ‘봄 편지’ 전문(全文)]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종종 좌절합니다. 나는 부모가 되어 아이를 쩔쩔매며 키우는 중인데, 다른 분들이 지나가다 우리 아이를 보면서 풋풋한 봄처럼 말합니다.

“많이 컸네, 몰라보겠다, 너. 훌쩍 컸어. 혼자 저절로 컸네.”

덕담으로 건넨 말인 줄 알면서도 속이 상합니다. 속 상하는 것은 아이가 훌쩍 크는 동안 얼마나 많은 폭풍우를 건너왔는지, 그 폭풍우를 함께 맞으며 부모가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 몰라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커 왔고, 또한 아이들이 그렇게 크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내 맘대로 크지 않는 이유는 부모된 우리를 키워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거기 묻어있습니다. 아이들이 내 뜻대로 자란다면,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인 우리도 자라야 하기에, 마흔 고개를 넘은 어느 날부터 인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인생수업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이 교훈은 우리 아이를 품에 끼고 키우면 원하는 대로 자란다는 속설을 가차없이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 보면, 부모로서 속 상한 것은 아이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자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뜻대로 자라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되지요.

아이들이 종종 부모들을 가르칩니다. 부르신 자리가 힘겨울 때, 아이들은 시인의 말처럼, 봄 편지가 되어 우리를 꽃피웁니다. 나른한 5교시에도 선생님이 늘어지게 낮잠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우리들의 미래이고, ‘어린 하나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문제에 정신차릴 수 없도록 바쁘고, 힘겨워도 부모 노릇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장차 ‘백 만인을 섬기는 어린 하나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더샘물교회는 다음세대 믿음계승사역으로 그 부모 노릇을 함께 하려합니다.

더샘물교회 부모세대는 헤살거리는 아이의 맑은 잇몸을 보고 분홍 진달래꽃 같은 희망을 먼저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 속상했냐는 듯, 아이들보다 먼저 예수 제자의 길을 걷게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가에 먼저 가서 먼저 꽃피우는 사람입니다. 무수한 봄을 지나고 아이들의 삶은 예수제자의 열매를 맺을 겁니다. 아이들은 팝콘처럼 크지 않고 나무처럼 자랍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먼저 가서 꽃피우는 일입니다. 먼저 예수제자로 사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 겨울에 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더샘물학교의 첫 걸음에 마음을 담아주세요. 기도로, 물질로 후원해주세요. 참여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의 한 겨울로 뛰어들어가, 먼저 봄이 되어주세요. 아이들이 믿음계승세대의 봄을 꽃피우도록 먼저 꽃이 되어주세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

2019년 2월 15일

더샘물학교 후원주일을 준비하면서,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