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았다 잘 견뎠다 말하려면

“사박사박/장독에도/지붕에도/대나무에도/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잘 살았다/잘 견뎠다/사박사박” [윤금순, ‘눈’ 전문(全文)]

놀라운 인생의 통찰을 담은 시를 우리 인생에 대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리 인생도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이 거기 있음을 발견합니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이 시인은 사박사박 내리는 차가운 눈을 맞으며 소리없이 하늘에서 내리는 따뜻한 위로를 받습니다.

이 짧은 문장에 시인의 팔십여 년의 인생이 무겁게 담겼습니다. 윤금순 시인은 영화도 찍었습니다. 작년 연말에 나온 독립영화 ‘시인 할매’의 주인공 중의 한 분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공통점은 전남 곡성 서봉마을에서 문을 연 ‘길 작은 도서관’의 김선자 관장의 책 정리를 도와주다가 김관장의 권유로 한글을 함께 배웠다는 겁니다. 어린 시절 오빠와 남동생을 학교 보내기 위해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배움을 포기했던 분들입니다. 서봉도서관에서 한글을 함께 배우기 시작하신 게 2009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2017년 연이어 이 분들은 함께 시집을 내셨습니다. [시집살이, 詩집살이] [눈이 사뿐사뿐 오네]. 평균연령 70대 후반인 일곱 명의 시인이 탄생한 겁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인생의 성실했던 순간들과 교차하는 유년기의 즐거움, 결혼과 삶의 상실, 어려웠던 시집살이, 가난의 무거움과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같은 삶의 농밀함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말하려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잘 살아온 인생을 말하려면 잘 살아내야 합니다. 어떤 이가 그 어깨 위에 누군가를 올려놓고 팔십여 년을 끈질기게 버티며 걸어 무거운 책임으로 살아왔다면, 그 인생은 말 할 자격이 있는 인생입니다. 이 분들은 그 말들을 깎고 다듬어서 시로 녹여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 식탁에 올려놓습니다. 먹어보라 권합니다. 이 짭조름하고 눈물겹지만 단순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맛보라고 합니다.

예수를 아는 인생은 더할 나위 없습니다. 살아내고, 견뎌낼 뿐 아니라 즐거움을 아는 인생을 살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가 끝나가는 날, 식탁에서 아이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아빠, 우리 집은 언제나 식탁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아요. 우리 너무 행복한 집이죠?”

문득 몇 년 전에 딸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한 집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고. 성실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 가시는 어른들의 발걸음이 말하고 있다고.

이 곡성할매들, 우리 어머니들을 떠올리며 신자의 남은 인생을 생각합니다. 잘 살고, 잘 견뎌야지. 아깝도록 소중한 것을 아끼고 또 아껴서 믿음을 이어 가도록 해야지. 다짐하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쉼없이 자라는 더샘물 언약가족의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우리 인생을 주를 위해 먼저 깎고 다듬으며 살고, 언약의 자녀들이 잘 살도록 해야지 기도하고 기도하는 밤입니다.

2019년 2월 7일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며 몸을 쳐서 훈련하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