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여름 밤에 헤아려본 것
폭염이 계속되는 몇 주를 지나다가, 기억이 녹아버린 듯, 해지면 선선 해지는 여름 밤의 기온을 잊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교회로 가는 길에 열어젖힌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에 깜짝 놀라 바람을 만끽했습니다. 마치 가을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푹푹 찌더니 이런 날을 맞이하네요. 8월의 여름새벽의 이 시원한 바람이 얼마 만인지. 이 여름은 1994년 여름 이후, 한동안 깊은 기억을 남길 것입니다. 이 여름더위의 맹위는 ‘에어컨보다 자연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누군가의 신념을 단숨에 깨뜨렸고, ‘이열치열’이라는 여름 관습어를 지워버렸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가을은 언젠가 옵니다.
“입추가 한참 지났는데, 너무 더워요.” 지난 주에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헤아려 보았습니다. 왜 입추가 한자로 입추(入秋)가 아닌 입추(立秋)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가을로 저절로 들어서는 게(入秋) 아니라, 내가 마음먹고(立秋) 기다려서 오는 게 아닐까?
자주 물을 마셔야 하는 여름, 자신을 샘물이라고 밝히신 예수를 생각합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말씀하셨다.”(요19:28)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4:14)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시기 위해 스스로 목마름에 놓이셨던 창조주로부터 물을 받아 마십니다. 그 물만이 사람의 목마름을 멈추게 하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의 신비입니다. 자기 목마름의 고통을 당했지만 영원한 샘물이 되신 구세주로부터 물을 공급받아 우리들의 다양한 삶에 하나님의 손이 일하시길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여름일상에 주님을 기억합니다. 믿음은 역사하고, 소망은 인내하며 사랑은 수고합니다. 미소와 눈물 그리고 흐느낌과 회복된 웃음 사이에 우리 일상이 있습니다.
가을이 마음먹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듯이, 소망도 마음먹고 주님을 의존하는 사람에게 깃듭니다. 밤은 단지 자는 시간이 아닙니다. 아이를 재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밤의 갈빗대에서 새벽의 하와를 꺼내시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손으로 만들어 가을을 오게 할 수는 없지만, 마음먹고 기다려 가을은 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여름 밤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세요. 거기 당신을 위한 희망의 별이 하나 걸릴 때까지, 우두커니 하나님을 바라세요. 그 기도가 새로운 생명을, 회복을 만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인이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먹고 가을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밤의 갈빗대에서 새벽의 하와를 만드시는 광경을 보려 합니다. 그 신비하고도 벅차게 깃든 일상의 여름 밤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채워 기꺼이 가을을 맞이하려 합니다. 마음엔 벌써 가을이 왔습니다.
2018년 8월 17일
여러분과 함께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 밤에,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