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집에만 가져가면/꽃들이/화분이/다 죽었다” [진은영, ‘가족’ 전문]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요? 시인 진은영에게 가족은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 꽃피운 것들이 다 죽는 흑마법의 공간입니다. 이것은 1970년생 시인과 동시대 사람들의 공동경험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경험 중인 가족의 모습입니다. 2020년대에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 이후를 겪는 사람들에게 전통적 ‘가족’은 이미 해체되었습니다. 이제는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이 된 사람들에게 가족은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시나 소설과 다르게 드라마에서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절망을 피해갑니다. 이미 현실엔 없는 이상과 바램을 현실처럼 담아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조립식 가족, 2024>은 하나의 이정표입니다. 드라마는 묻습니다. “이미 깨지고, 결함이 가득하고, 책임지지 않는 해체된 가족의 시대에 새로운 가족을 조립할 수 있을까?” 자녀를 잃고 이혼으로 깨진 남자와 엄마가 떠나버린 아들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이자 엄마는 자기 상처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남편과 아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그 뒤에 남겨진 남자와 그의 아들을 자기 가족으로 품는 이가 있습니다. 자신도 오래전 아내를 잃었고, 엄마 없이 딸을 키우는 상실이 현재형인데도 말입니다.
그가 드라마 <조립식 가족>의 기둥입니다. 그는 자기 통증이라곤 느끼지 못하는 사람, 혹은 통증을 유능하게 감출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를 중심으로 가족이 한 사람씩 조립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가족관계는 이보다 건강합니까? 이런 상실 속에서 희망을 품고 현실로 만드는 <조립식 가족>이 있다면요?” 어쩌면 가족 해체 시대에 건강한 가족은 작은 단위의 가족 2명~4명이 똘똘 뭉친 폐쇄성이 아닐 지 모릅니다. 부족함과 결핍과 상실이 흠이 아니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품이 되어 또 다른 상실의 아픔을 함께 끌어안고 성장하는 <조립식 가족>이어야 한다고 드라마는 말을 건넵니다.
드라마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조립식 가족>보다 오래된 새로운 대안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결함 많고, 약함 가득한 사람들이 예수의 구원이라는 공통점 하나 때문에 성경에서 배운 대로 연결된 새로운 가족으로 만납니다. 그 곳이 목장입니다. 일상을 살며 성경에 의존하여 돌아보고 반성합니다. 목장에서 함께 만나서 잘난 것을 나누기 보다 못난 나를 새롭게 하신 예수를 나눕니다. 예수의 은혜 때문에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성장합니다. 우리는 목장을 통해 함께 지어져 가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교회라는 영적인 가족의 중심엔 영웅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장에는 위대한 사랑을 가르치고, 그 사랑의 본이 되신 예수를 닮아가는 과정만 가득합니다. 그 떨림과 거룩한 몸부림으로 제2기 목장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가족됨을 영광으로 여기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