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2월, 발명왕 에디슨의 뉴저지 실험실과 공장에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7세였습니다. 그간 누적된 그의 성과들이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가는 순간,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가서 엄마를 불러오너라. 이런 불구경은 다시 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화재가 진압된 현장에 다시 서서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의 실패가 모두 불탔구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서 좋구나. 나는 내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그는 화재 3주 만에 그의 첫 번째 축음기를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은 절망적인데 에디슨의 태도에서는 절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감사”라는 제목의 짧은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시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무명의 재소자가 썼습니다.

바퀴벌레야 감사하구나/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찾아와 주었구나

이 시의 작가는 지난 날의 잘못으로 인해 바퀴벌레 나오는 누추한 교도소에 갇혀 있지만, 분노와 우울감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치십니다(살전 5:16). 어떤 조건이나 상황을 전제하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유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수능을 잘 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기쁨을 맞이한 사람도 있고 슬픔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조건과 상황을 살피지 않으시고, 모두를 향해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일부만 감사하지도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감사는 조건과 상황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상황에서 시작되지 않고, 우리의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감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의 삶에 실패와 어려움, 두려움과 염려가 있지만 그 자리에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도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명령에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거야. 너희를 보호할 거야” 하시는 하나님의 결단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해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우리 삶에 함께 계셔서 모든 과정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우리는 자신 있게 감사를 선택합니다. 우리를 덮친 상황이 하나님보다 컸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요일 4:4). 우리를 덮친 상황이 하나님보다 강했던 적도 없었습니다(요 16:33). 그래서 우리는 오늘 감사를 선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