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不在)의 존재(存在)
지난 주중 어버이날 즈음하여 한 장로님과 대화했습니다. 이미 소천하신 부모님이 노년에 진지 드실 때, 고기반찬을 자주 올려드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노년을 몰라 근육이 급격히 줄어드는 부모님의 때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담담함 속에서 그리워하는 마음 한 켠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자여손(子與孫) 다 고이고 길러낸 나이에도, 부모의 부재는 빈자리입니다. 부모는 자녀 된 모든 이에게 ‘부재(不在)의 존재(存在)’입니다.
결혼한 지 오래되어 황해도가 고향인 장모님의 명절음식인 만둣국과 빈대떡에 익숙해진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던 어릴 적 충청도의 입맛이 돌아왔습니다. 명절에 먹던 단순한 떡국이 그리워진 겁니다. 유년시절을 보낸 충청도의 시간보다 몇 배의 시간이 흘러 나이가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어느 날 문득, 맥락도 없이 복원된 입맛이 신기했습니다. 밥을 먹다가 어릴 적 기억과 연결된 음식을 찾는 것, 연세가 아흔이 넘으신 어르신이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한 기억을 두런거리게 되는 것도 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가 가진 힘입니다. 아흔의 어르신에게 부모님은 이미 ‘부재(不在)하시지만, 생생하고 강력하게 기억을 매개로 마음엔 늘 현재형으로 살아 계십니다. 그게 아흔의 어른에게만 해당될까요? 부모가 베푸신 선한 마음과 말도, 말과 행동으로 내려 주셨던 상처도, 기억 속에 현재형으로 남아 깃발처럼 나부낍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아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셉니다. 그가 성실하게 살아 자녀를 품에 고였든,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게 키워 상처를 냈든, 부모는 오늘 부재(不在) 중에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우리들에게 아버지, 어머니는 늘 ‘부재(不在)의 존재(存在)’입니다. 오늘 때를 따라 만날 수 있는 부모님을 두신 분들에게도 부모님은 늘 ‘부재(不在)의 존재(存在)’입니다.
부모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자녀를 대하는 말과 행동에서 부모를 느낄 때, 좋은 기억으로 존재하시기도 하고, 상처받은 기억으로 괴롭기도 합니다. 오늘 여기 계시지 않지만 상처 입었던 인생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분들, 자녀를 잘 키우려고 새 결심으로 새 길을 내어 인생을 걸으려는 분들, 부모에게서 행복한 추억의 박물관을 풍성하게 물려받은 분들에게도, 부모라는 ‘부재(不在)의 존재(存在)’에 대해 성경을 통과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비록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해도, 절망의 바닥을 통과하여 다 깨진 유리조각들을 맨발로 걷는 것 같은 상처의 유년을 통과했어도 예수를 만난 후,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양육하셨다는 걸 자녀와 나눠야 합니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 위로의 말씀 때문이라고, 자녀에게 담대히 증거 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와 그 임재 속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신 6:5-7).”
여러분과 함께 자녀의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를 바라보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