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양식, 사도행전 드실 시간입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 자이언티가 부른 ‘꺼내 먹어요’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멜로디와 함께 가사 첫 줄을 들으며 동의했습니다. “쉽지 않죠? 바쁘죠?/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죠?/바라는 게 많죠(그렇죠)//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집에 가고 싶죠?(집에 있는데도)/집에 가고 싶을 거야/그럴 땐, 이 노래를/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분주한 우리에게, 지친 하루를 사는 우리에게 설득력이 대단한 노래였습니다. 부드러운 음성에 가사가 꿀떡꿀떡 물 마시듯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꺼내 먹으라 해서, 전체 가사를 인터넷에 찾아보았습니다. 먹을 게 없었습니다. ‘뭘 먹으란 거지?’ 잠시 의아해하다가 ‘예수 통역기’를 작동시켰습니다(우리가 다 예수 통역기 한 대쯤 장만하고 살잖아요?). 아, 피곤할 때, 지칠 때, 분주하다 문뜩! 내가 무얼 위해 사나 싶을 때, 우리가 초콜릿처럼 꺼내 먹는 건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신자를 세워온 오래된 새 선물입니다. 먹는 사람마다 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삽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세워진 이전과 다른 삶을 걸으며, 그 인생길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믿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던 신자들의 교회가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에 속한 평범한 사람들이, 그 삶 속에 담긴 비범한 진리를 증언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누린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언하는 복음서와 그 복음으로 살아가며 분투하는 교회의 이야기인 서신서 사이에 교회가 세워진 역사를 사도행전이 기록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증거하는 교리나 고백들(서신서)이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복음)과 그 사건의 목격담이 다음세대에 증거 되어 일어난 교회 공동체 형성의 역사에 모두 근거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예수를 따르는 신자들을 통해 증언되고 확증되었는지, 그 복음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두렵고,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파되었는지 알려줍니다. 예수의 복음을 인하여 산다는 것은 믿음의 감격과 그 생명의 역동성으로 사는 일입니다. 철학자 한병철 씨가 지적한 오늘은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안내하는 긍정성 사회’입니다. 스스로 망설임 없이 분주하게 질주하다 ‘피로골절’로 마음도 부러지는 험한 시대입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신자들이 예수복음이 준 내적인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초점을 다시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꺼내 먹을 초콜릿 같은 에너지 충전은 영원에서 옵니다. 영원한 진리, 영원한 통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우리가 이미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 하나님이 교회와 신자 개인의 일상에 내주하셔서 자기 욕망을 내려놓게 합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욕망을 최소화한 행복한 축소와 부정을 맛본 사람들, 그 맛있는 ‘성령의 초콜릿’을 꺼내 먹은 사람들만,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자신을 부인하며 섬기는 교회의 증언 사역에 참여합니다.
패러디로 전합니다. “쉽지 않죠? 바쁘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죠?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그럴 땐, 이 말씀을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이제 사도행전 드실 시간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말씀으로 힘을 내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