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더샘물 새해 초점_존재 목적대로 살기
2024년 새해, 교회를 향한 기도의 초점은 존재 목적대로 사는 일입니다. 꽃도, 나무도, 새도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그릇 하나도 존재 목적대로 쓰입니다. 주님이 더샘물 모든 성도들의 인생을 그 고유함과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시는 새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질문해야 합니다. ‘더샘물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스스로 물으면서 더샘물 비전 캐스팅(TSMC Vision Casting; TVC) 주일을 삼주 동안 보내려 합니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활동한 키프리안(Thascius Caecilius Cyprianus, 200?-258)이란 교부가 있습니다. 이분은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순교한 분입니다. 이분이 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두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다(No one can have God for his Father, who has not the Church for his mother).” 물론 키프리안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 다릅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교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가 그 믿음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영적 모판’이라는 것입니다. 엄마의 태속에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듯이 영적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고 성장하는 무대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New Year Prayer 9를 하면서 매일 공동체로 기도하는 이유는 교회로 부르신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과 교회에 허락하신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 마28:19-20)을 행할 힘을 얻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위임령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더샘물교회는 복음을 믿고 누리고 전하는 교회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에 순종하며 함께 지어져 갑니다. 우리는 그저 살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저 서로 반가운 친목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목적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서로 붙들고 울고 웃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고, 격려하며 끝내 살아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통치를 개인, 가정, 일터 같은 파송하여 보내신 일상의 모든 곳에서 목적에 맞게 초점 맞추며 살아갑니다. 그 목적 안에서 즐거움도, 슬픔도 두려워할 일도 다 주님을 향한 경배로 바꾸어 냅니다.
신학자 랄프 마틴(Ralph P. Martin)은 ‘교회는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선언하는 역사적 증언’이라고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핵심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교회는 종종 역사적 증언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죄에 오염되어 길을 잃은 이 땅을 유리하는 최고 방랑자일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비난을 쏟아낸 지 오래되었습니다. 더샘물교회는 이러한 교회의 슬픈 자화상을 따갑게 비난하기 보다 본래의 교회를 회복하며 따뜻하게 섬기면서 서로 사랑하는 길을 새해에도 함께 걸어가려 합니다. 가벼운 냉소의 말을 던지는 것은 쉽지만, 사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는 죄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이 현실이 되는 곳입니다. 더샘물교회는 그 허물 많은 교회를 사랑하여 참된 교회로 살고자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교회만큼 제한받으시고, 교회의 명성과 비난을 받는 만큼 자기 이름을 삼으십니다. 그래서 신자의 일상이 예수님의 영광이자, 치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로 부름받을 때, 모두 작은 예수로 부름받습니다. 세워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선언하는 역사적 증인으로 2024년 일상을 함께 만들어갑시다.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적 증인 되기 원하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