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것들과 견뎌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폭염. 열대야. 장마. 코로나19 확진자 1615명. 지난 수요일 우리 일상을 뒤덮은 지표입니다. 다 좋은데, 그 날 장마는 없었다구요? 네. 맞습니다. 그 날 우리는 분명 땡볕 아래에서 폭염의 하루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기상청은 “오는 20일부터 장마가 끝나고 뜨거운 공기가 상공을 뒤덮는 ‘열돔 현상’의 폭염이 한반도를 덮칠 것”이라고 예보했습니다. 이 예보상황을 알리던 기사의 숨겨진 메시지에는 에어컨 판매에 대한 전망이 담겼습니다. 2018년 폭염으로 전국 평균 폭염지수 31.4일, 열대야 지수 17.7일을 경험하면서 에어컨이 250만대가 넘게 팔린 것처럼, 올해도 그에 못지않을 거라는 예측입니다. 그런데 거기 기사도 의도하지 않았던 숨겨진 메시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우리는 동일한 예보를 받는 한반도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선 장마를, 또 다른 곳에선 돌풍을 그리고 우리는 폭염을 경험하는 다른 일상을 마주해도 다 한반도의 여름을 삽니다. 견딜 수 없는 더위를 견뎌야 하고, 자녀들과 식구들이 견디도록 더위보다 더 뜨겁게 보듬어야 합니다. 여기 또 다른 여름을 견딘 시인이 있어 소개합니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내 마음 더 여리어져/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9월도 시월도/견딜 수 없네/흘러가는 것들을/견딜 수 없네/사람의 일들/변화와 아픔들을/견딜 수 없네/있다가 없는 것/보이다 안 보이는 것/견딜 수 없네./시간을 견딜 수 없네/시간의 모든 흔적들/그림자들/견딜 수 없네/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시인 정현종, 시(詩) ‘견딜 수 없네’ 전문(全文)]
시인은 무더운 8월을 견딜 수 없는 게 아니라, 8월이 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다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의미도 모른 채, 더위를 만나고, 열대야와 씨름했던 여름이 지나가는 게 견디기 어렵습니다. 여름을 그렇게 보낸 사람은 가을이 와도 속수무책입니다. 그 계절도 그저 흘러갈 것이고, 변화는 아픔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분투하는 여름의 의미는 여름의 온도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부르심이 닻처럼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라는 항구에 정착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밤마다 파도에 시달릴 겁니다. 우리는 예수쟁이입니다. 누군가에겐 멸칭(蔑稱)이었을, 이 명칭이 저는 좋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뭐라 불러도 좋습니다만, 무얼 해도 예수로 하고, 어려워도 슬퍼도 먼저 예수께 기도하고, 뛸 듯 기쁘고 좋아도 다 예수께 감사하는 일이 좋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밀가루에 넣은 누룩처럼 조용히 오셔서, 우리 삶을 고귀한 생명과 삶으로 부풀리셨습니다. 성도님의 삶이, 성도님을 아는 모든 이의 삶이 조용히 생명으로 벅차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쟁이의 특권은 예수께서 늘 삶의 목적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 우리는 주어진 삶을 삽니다. 삶은 견딜 수 없는 것들과 견뎌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성장합니다. 누룩이 들어간 밀가루처럼, 예수쟁이는 그 시간 사이에 들어오신 예수의 품에서 견딥니다. 더위와 계절 그리고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고 예수의 말씀과 함께 그 역사 속에 있었던 생애만 남을 것입니다. 제가 더위먹은 것 같습니다. 더위 잘 견디시라고 드린 말씀입니다. 예수의 영생 안에서 우리 여름의 생명 속에 단맛이 깃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1년 7월 18일
무더위를 여러분과 함께 견디는,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