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을 퍼뜨리자
지난 주에 *톡을 하나 받았습니다. 제목은 “면역력을 퍼뜨리자.” 열어보니 면역력을 강화한다는 건강보조제 상품들을 구매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홍삼, 영양제, 프로폴리스 같은 제품들이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감염병의 염려가 커질 때, 이런 상품들도 유익하겠구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코로나19사태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파이팅 넘치는 유쾌한 에너지가 좋았습니다.
이 죽음의 공포를 가져오는 감염병의 시대에 신자의 부르심을 생각합니다. 신자는 죽음을 영원히 죽이는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새로운 소식, 복음(福音)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죽음을 영원히 죽이셨을 때, 죽음을 영원히 죽이는 백신은 완성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쳤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알게 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함께 고백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오셨을 때, 새로운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밥처럼 먹으면서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눈 뜨게 됩니다. 예수를 품은 그 가슴마다 사자가 산다는 것을. 사자가 포효하고 있다는 것을. 제자들은 이전과 다르게 죽음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두려움을 내려 놓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삶은 문제 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를 만나서 ‘빠른 해결’을 원합니다. 그러나 삶은 [문제와 해결구도]로 보면 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흔한 이유가 문제의 빠른 해결과 삶의 모호한 부분에 명확한 답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그 인생 자체가 문제 덩어리로 전락하는 일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일을 비유하자면,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7살난 아이가 걸어가다 넘어졌습니다. 무릎에서 피가 납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주의를 줍니다. 적절한 처치를 하고 반창고를 붙여줍니다. 아이가 묻습니다. “그냥 피가 딱 멈추는 방법은 없어요?” 눈물이 눈가에 그렁그렁한 아이를 보며 부모는 말할 겁니다. “네가 건강하게 지내면, 금방 나을 거야.” 그러나 아이도 부모도 압니다. ‘금방’은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의미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낫게 된다는 것을. 건강한 몸을 가졌다면, 아이가 뿜어내는 건강한 면역력으로 언젠가 상처가 낫게 됩니다. 아이는 그런 일상을 반복하는 동안 자라게 됩니다.
신자의 일상도 이와 같습니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목적이 있는 믿음의 일상을 살아간다면, 문제를 과대공포로 대하지 않습니다. 덤덤하게 문제를 끌어안고, 믿음의 면역력으로 녹여내고,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일상의 시간을 채웁니다. 어느덧 끙끙대던 문제가 사라집니다. 그 일을 반복하는 게 인생입니다. 그동안 인생은 성장해갈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 저 분은 문제가 없이 평생 평탄했을 거야 하는 분이 있다면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 분의 인생도 그렇게 지나가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인생이 성숙할수록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신자의 정체성이 상황을 이기는 면역력입니다. 코로나19감염병은 이전의 유행질병처럼 시간이 지나야 끝날 겁니다. 우리 인생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동안에도 주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면역력을 가진 신자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한편, 예수의 구원과 복음이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인생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을 습격하려는 이단바이러스를 막아내고, 감염병의 위협에서도 일상을 견디며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더샘물 성도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이 비상한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 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믿음의 면역력으로 이겨냈다고, 견디는 동안 믿음의 인생이 자랐다고.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오늘 일상에서 믿음의 면역력을 퍼뜨립시다.
2020년 3월 9일
여러분과 함께 견디며 믿음의 길에서,
이찬형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