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중에 봉준호감독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6개부문 후보에 올라 각본상, 최우수국제영화상, 감독상 그리고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영화 백 년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감독상 수상소감은 세계적인 명배우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영화를 공부할 때 책에서 읽고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은 우리의 위대한 감독 마틴 스콜세지(Martin C. Scorsese; 그는 이번 아카데미상 감독상 후보에 함께 오른 노장 감독)입니다. 저는 마티의 영화를 보고 공부했던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입니다. 또 저의 영화를 아직 미국의 관객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했던 쿠엔틴(쿠엔틴 타란티노;함께 감독상 후보에 오른 미국 거장 감독)형님이 계신데 정말 사랑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다면, 감동할 수 없습니다. 참여한 사람들, 소감을 들은 전세계 사람들이 그 짧은 소감에 감동했습니다. 봉준호감독은 이 모든 소감을 우리 말로 했고, 그 소감은 영어통역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와 함께 봉준호 감독이 계속 화제였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영화감독 봉준호의 인간적인 풍모와 매력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여기 한 몫을 한 것은 그의 통역사 샤론 최(Sharon Choi)입니다. 통역을 통해 봉준호감독의 영화와 거기 깃든 생각 아울러 그의 재치 있는 말투와 뉘앙스까지 전달되었고 사람들은 공감하며 이 이방인 감독이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통역사도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통역사가 이렇게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봉준호감독의 생각과 그 행간의 뉘앙스를 정확하게 통역했습니다. 전문 통역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봉준호감독을 알렸을 뿐 아니라, 본인도 주목을 받게 된 것입니다. 통역사가 모두 이런 주목을 받지는 않습니다. 통역사로서, 그녀의 남다른 면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몇 가지를 꼽자면, 그녀 자신이 영화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정확한 언어 구사력, 즉시 번역하여 메모하는 습관(한 영화인은 샤론 최의 노트를 자신에게 달라고 애걸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봉준호감독의 의도와 영화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이름없는 영웅(unsung hero)”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기쁜 소식보다 ‘이름없는 영웅’으로 불린 통역사에게 더 마음이 가는 이유가 뭘까요? 이 소식을 보면서 신자의 정체성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구원을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된 신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통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삶의 상황을 통역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고통과 힘겨움 그리고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아픔으로 읽고, 씻기지 않는 상처로 통역합니다. 예수를 알아도 바뀌지 않는다고 해석합니다. 불행한 인생 오역(誤譯)입니다. 세상은 제대로 된 통역을 들을 때, 보이지 않는 예수를 보게 됩니다. 길을 잃으면, 길이 시작된 곳으로 다시 와야 합니다. 거기서 다시 걸어야 합니다. 맨 처음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열 두 제자들이 세상을 향한 예수 통역사였고, 그 통역을 따라 예수와 하나님나라에 들어온 신자들이 그 시대에 예수를 알리는 통역사들입니다. 인생은 예수를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소망합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예수를 통역하는 이름없는 영웅(unsung hero)의 명단에 우리 이름이 있기를!
2020년 2월 16일
여러분과 함께 예수통역사로 부름받은,
이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