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 찾아왔습니다. 움츠렸던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메말랐던 땅 위로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지닌 경이로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면, 우리 영혼에도 따뜻한 볕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이 찬란한 봄날에 깊이 묵상하기 좋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화가 마코토 후지무라의 『컬처 케어』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가난했던 신혼 시절, 한 다발의 꽃에 얽힌 일화로 시작됩니다. 젊은 무명 화가였던 후지무라는 당장 먹을 끼니와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 주디가 식료품 대신 아름다운 꽃다발을 사 들고 집에 돌아옵니다. 팍팍한 현실에 마음이 날카로워져 있던 그는 그만 아내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먹을 것도 없는 마당에 어떻게 꽃을 살 생각을 할 수 있어!” 그때 아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먹이는 것도 필요해.” 이 짧은 한마디는 저자의 삶과 예술, 그리고 신앙의 궤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아름다움이나 예술을 배부른 자들의 사치품 정도로 여기곤 합니다. 당장 생존이 시급한 세상에서 꽃이나 그림, 한 편의 시는 실용성 없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납니다. 그러나 아내의 꽃다발은 인간이 단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부르심, 즉 ‘문화 돌봄(Culture Care)’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세상 속으로 주디처럼 꽃다발을 들고 다가서는 일입니다.
문화 돌봄은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창조 세계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회복하여, 세상이 다시 생명력을 얻고 피어나게 하는 청지기의 사명입니다.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치열한 도심 속 일상, 모든 것이 쓸모와 효율,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되는 세상에 진리가 ‘아름다움’이라는 옷을 입고 다가갈 때, 비로소 이웃들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반응할 것입니다. 참된 아름다움은 상처 입은 세상을 위로하고, 나아가 잃어버린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켜 영혼을 회개로 이끄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아름다움을 갈망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꽃다발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컬처 케어는 결코 거창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에서 생명을 가꾸고 돌보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식탁을 차리는 일, 성과 위주의 각박한 직장 생활 속에서 동료의 수고를 알아주며 건네는 따뜻한 격려의 말, 이웃의 깊은 슬픔에 공감하며 조용히 함께 흘리는 눈물. 이 모든 일상의 돌봄이 곧 우리가 세상을 향해 건네는 생명의 꽃다 발입니다. 찬란한 봄날, 십자가의 은혜로 죽어 있던 우리 영혼에 먼저 생명의 꽃을 피우신 주님을 보며 우리 공동체가 세상의 아픔을 품어 안고 생명을 싹 틔우는 비옥한 문화의 토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느라 메말라가는 영혼들과 씨름하는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복음의 환대와 기쁨이 담긴 꽃다발을 건네는 복된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협동목사 이동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