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엔 아낌없이 가지치기하세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서 그런가 봄이 더디 온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이맘때 성도들과 나누었던 글을 들여다보고 그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봄은 여지없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글을 나눕니다.
봄이 완연합니다. 일교차가 심해서 새벽에는 제법 두꺼운 옷을 챙겨야 하지만 정오쯤 되면 덥다고 느낄 만큼 기온이 오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생동하는 계절입니다. 나무는 온통 푸른 잎이고 식물은 이때다 하며 앞다투어 자랍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를 돋우라고 말없이 베란다 볕 잘드는 자리에 화분을 옮겨 놓고는 우리도 몸과 마음의 기지개를 켭니다.
하지만 봄에는 봄의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웃자라는 것들에게 봄은 말합니다. 잘라내라고. 식물을 잘 자라게 하려면 봄의 법칙, 봄의 역설을 익혀야 합니다. 잘 자라게 하려면 잘라버려야 한다는 역설입니다. 가지를 잘라야 관을 타고 양분이 힘차게 위로 오릅니다. 잎을 따주면 그 자리에 새순이 돋습니다.
과수원 농부들은 봄마다 이 봄의 법칙으로 삽니다. 탐스런 사과, 포도, 복숭아를 얻으려면 일찍 봄 마중을 나가서 1~2월에 가지치기를 하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사실 농부보다 먼저 나무들이 봄을 기다립니다. 겨울의 앙상한 가지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눈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을 봅니다. 나무들이 그 봄 마중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농부는 과감하게 생가지를 자릅니다.
우리 인생도 각 사람이 다르게 인생의 겨울을 살았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겨우 살기에 겨울이라고 한다지요. 그 겨우 산 생(生)의 과정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숨만 붙어있는 것처럼 혹독한 아픔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것처럼 느껴졌던 슬픔과 우울이 그 겨울을 통과한 다음 더욱 웃자랍니다. 해석되지 않은 분노가 가지를 냅니다.
봄에는 봄의 법칙대로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웃자란 슬픔, 우울함의 감정들을 가지치기해야 합니다. 혼자서 늘 고민했던 나만의 판단과 상상의 가지들도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슬픔, 하나님과 끊어진 나만의 기쁨을 가지 치세요.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된 슬픔을 맛볼 줄 알고, 예수께 붙어있는 기쁨을 공급받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많은 날 동안 스스로 무성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연결된 수많은 헛된 관계망 속에서 무성해서 연결될수록 깊은 허탈감과 상실에 시달렸지요.
하나님과 우리의 연결을 떼어놓으려는 어떤 관계망이든, 아낌없이 가치치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영적인 봄이 찾아옵니다. 주님께 부끄럼 없는 열매를 준비하는 봄. 오직 주님께 붙어있기 위하여.
2019년 4월 12일
다시 영적인 봄을 맞이하려는 여러분 곁에 있는,
이찬형 올림